[문화와 삶] 잔다리페스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올해로 7회째 행사를 끝낸 이 페스티벌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에서 온 100여팀의 공연이 펼쳐진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국내팀을 제외하면 이름만으로 관객을 끌어올 팀은 없다. 그럼에도 이 페스티벌을 찾는 이유는 잔다리가 아니었으면 평생 이름조차 몰랐을 각국의 음악가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올해도 많은 나라의 뮤지션들이 홍대앞을 찾았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몽골, 영국, 프랑스, 벨기에, 헝가리, 리투아니아… 이미 가본 나라의 음악들과 향후 갈 일이 없을 나라의 음악들을 두루두루 만났다. 동시간에 열리는 공연이 대부분이라 40분의 러닝타임을 한 무대 앞에서 지긋이 즐길 수는 없었지만, 마치 식사 대신 시식으로 배를 채우듯 겪어 보지 못한 세계의 음악을 짧게 짧게 끊어가며 보러 다녔다. 익숙한 음악들이 있었고, 새로운 음악들이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타나는 경향성들이 있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이 중심이 되는 일반적인 형태에 연연하지 않는 팀들이 많았다. 특정 장르의 문법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오키나와에서 온 여성 듀오, 하라헬스는 기타와 드럼만으로 펑크와 힙합을 연주했다. 보통 이런 팀들은 기타 이펙터를 사용해서 저음역대를 보완하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고정관념을 깬 팝을 연주했다. 온몸엔 문신을, 얼굴엔 마스크를 쓴 채 기타와 시퀀스로만 구성된 영국의 본 컬트는 데스 메탈을 일렉트로니카로 들려줬다. 평론가들이 만든 장르의 시대가 끝나고 개인의 취향이 스타일이 되는, 해시태그의 시대가 곳곳에 스며들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잔다리 페스타를 통해 발견한 음악들 중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팀들의 유형은 두 가지다. 원초적이거나, 지역적이거나. 지난해 잔다리 최고의 발견으로 회자되고 있는 마다가스카르 출신 펑크 밴드 디지 브레인이 전자였다면 집시들로 구성된 보헤미안 비트레이어스는 후자였다. 보통 이런 팀들은 ‘주변 국가’에서 등장한다. 20세기를 지배한 영미권의 음악을 동경하되, 각 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또한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음악들이다. ‘글로컬(global+local)’이란 개념이 등장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한때의 조어가 아니다. 생활에 디지털 문화가 스며들수록 그 특징이 세계 곳곳의 음악에 더욱 강한 경향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잔다리에 모인 아티스트들이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팀이 있다. 몽골에서 온 컬러스였다. 보편적인 팝·록의 대체재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글로벌은 있으되 로컬이 없었다. 그 팀을 보며 나는 떠올렸다. 잠비나이, 씽씽밴드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하고 반응하는 팀들 역시 마찬가지 시각으로 평가받았음을. 하드코어, 레게 등 서구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퍼진 음악을 씨줄 삼아 전통음악의 날줄을 화학적으로 녹였기에 차별성과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었음을.

모든 일정이 끝난 후 각국의 뮤지션들은 홍대앞의 음악 술집에 모여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며 쉼없이 떠들었다. 인사를 나누고 SNS 계정을 주고받았다. 서로를 관통하는 보편성에 서로를 구분짓는 지역성을 연결하려는 자연스러운 시도였다. 이 네트워크에는 디지털이라는 단어의 차가움이 없었다. 로컬 문화의 힘을 지속하게 하는 술냄새, 땀냄새만 났다. 국적 없는 사람들의 냄새였다.

원문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102048035&code=990100

Share:

Leave a Reply